정부가 2024년도 예산안에서 연구개발(R&D) 분야를 대폭 삭감한데 이어 올해 기관운영비까지 삭감할 것으로 예상돼 과학계 단체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6일 CBS노컷뉴스 보도에 따르면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 산하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 올해 기관운영비 삭감 지시를 내린 뒤 이에 대한 삭감안을 받았다.
조만간 과기부는 출연연 실무자들과 삭감안을 협상해 이를 확정 지을 방침이다.
통상적으로 출연연 기관운영비는 NST 이사회를 열어 승인 받는다.
이사회에는 과기부 차관과 기획재정부 차관, 산업통상자원부 차관 등이 당연직 이사로 참석한다.
이사회를 통해 올해 초 편성된 기관운영비 액수는 국가녹색기술연구소(녹색연) 이 16억 3천만원, 한국전기연구원(전기연)이 89억 1700만원,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에너지)이 146억 6200만원이었다.
각각 4억 3600만원, 11억 8300만원, 18억 8800만원 삭감하라고 요구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삭감률만 26.7%, 13.3%, 12.9%다.
올해 3월 과기부 차관·기재부 차관이 참석한 이사회 승인을 받았지만 R&D 예산이 '카르텔'로 지목 받던 시점과 맞물려 기관운영비 삭감 지시가 내려진 걸로 알려졌다.
과기부 관계자는 "작년에 공공기관 운영위원회에서 올해 경상비 지출 규모를 3% 삭감하라고 모든 공공기관 공통으로 내려왔다"면서 "출연연도 공공기관이기 때문에 이를 지키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해명했다.
한편 내년 정부 R&D 예산은 1964년 정부 통계 작성 이후 60년 만에 처음으로 줄어든다.
지난달 29일 정부가 국무회의에서 의결한 내년도 총지출 예산안은 656조 9천억원으로 올해 본예산 대비 2.8% 증가한 가운데 내년 R&D 예산은 25조 9천억원 규모로 책정됐다.
올해 31조 1천억원 대비 16.6% 줄어 정부 예산 12개 분야 중 감소 폭이 가장 컸다.
주요 R&D예산이 전체 정부 R&D 예산에서 80% 정도를 차지하는데, 이미 올해보다 내년 예산은 13.9%(3조 4500억원)삭감됐고, 여기에 기재부 일반 R&D 예산까지 합쳐 봤을 때 16.6%(5조 2천억원)이 줄어든 셈이다.
이에 따라 출연연 내년 주요 사업비 예산안은 올해 대비 25.2%나 삭감됐다.
조승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분석에 따르면, 내년 NST 산하 25개 출연연 주요사업비는 총 8858억 8300만원으로 책정됐는데, 이 금액은 올해 출연연 주요사업비 예산인 1조 1847억 7100만원 대비 25.2% 줄어든 것이다.
주요 사업비는 전체 출연연 예산에서 순수 연구개발(R&D) 활동에 쓰는 예산이다.
정부가 밝힌 주요 사업비 삭감 규모 17.5%보다 더 높은 삭감 비율이다.
삭감 액수와 맞물려 일방통행식 지침도 문제다.
윤석열 대통령이 6월 말 R&D 예산을 '카르텔'로 지목하면서 두 달 만에 예산안이 완전히 새롭게 짜여지는 바람에 어떤 연구기관의 예산이 어디서 얼마만큼 왜 삭감됐는지 잘 몰라 대혼란에 빠졌다.
이어확 전국과학기술연구전문노조 수석부위원장은 "카르텔이라고 지목했으면 그 부분을 도려내야지, 지금 정부가 하고 있는 일은 문제가 되는 부분이 아니라 다른 중요한 부분들을 칼질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 수석부위원장은 특히 "명분에 따른 삭감이 아니라, 톱다운 방식으로 삭감 논리를 개발해서 알아서 삭감하라고 '던지기'를 하고 있는 행태가 문제"라면서 "전 과학계가 정부의 부당한 행동에 대해 전국민에게 알리기 위해 공동 대응에 나서게 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 출연연 연구자는 "미국은 국가R&D 투자를 5년, 10년 중장기 프로젝트 중심으로 진행하고 실패에 대한 책임도 묻지 않는다"면서 "우리가 대형 프로젝트만 선별하고 키운다면 기초연구는 설 자리가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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