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계의 정당한 목소리도 소비자와 시장의 신뢰 없으면 공정성과 타당성 인정받기 힘들어
제대로 된 제품 만들고 소비자와 국민들에게 억울함 호소가 정석
[에너지단열경제]이승범 기자
이천 물류 창고 화재 사고 이후 발표된 정부의 단열재 규제로 인해 스티로폼과 우레탄폼 업계가 직격탄을 맞은 가운데, 불합리한 규제의 반대를 위한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업계 스스로 가짜 단열재를 척결하는 자정 운동을 벌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업계의 반발을 사고 있는 규제의 주 골자는 내단열재까지 화재안전 성능을 난연으로 확대하고 샌드위치 패널의 심재를 준불연으로 상향하면서 2022년부터는 그라스 울 등 무기단열재로만 제한하는 것이다.
이 같은 규제가 나오게 된 배경은 이천 화재 합동수사단이 발표한 화재의 외형적 원인(근본원인은 안전불감증)에 따른 것이다.
경찰은 지하 2층의 용접 작업 과정에서 발생한 불티가 내단열재로 사용된 뿜칠 우레탄폼에 옮겨 붙어 서서히 타들어가다 외벽 근처에서 산소가 공급되면서 급격히 큰 화재로 전개됐다는 수사 결과를 내놓았다.
용접작업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티는 1천6백∼3천도의 고온으로 우레탄폼 등의 단열재에 튀게 되면 곧바로 화재로 이어지기도 하지만, 이번에는 안으로 타들어 갔다가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뒤 본격적으로 불길이 치솟은 경우인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경찰은 용접 불티가 옮겨 붙어 최초로 발화된 우레탄폼 시공 위치와 대형 화재로 번진 지점이 30m 이상의 상당한 거리가 있었던 만큼 제대로 된 난연성 우레탄폼을 사용했다면 화재가 커지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판단을 하고 있다.
최초 발화지점이 공기가 적어 곧바로 대형 화재로 커지기가 쉽지 않았던 만큼 함량 밀도가 높고 난연성을 갖춘 PIR로 시공했다면 참사를 막을 수도 있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단열재 업계 관계자들은 화재에 약한 PUR이 시공 됐으며, 그나마도 함량이 미달된 제품이 사용됐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이 같은 내용을 근거로 정부는 그동안 규제하지 않았던 내단열재에 대한 화재안전 성능을 난연으로 확정했다 보여 진다.
이번 화재만 놓고 보면 실질적으로는 내단열재가 난연 이상으로 시공됐어도 불티의 온도가 3000도에 이른다는 점을 감안하면 마찬가지 결과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수사 발표대로 최초 발화 지점에서는 공기가 부족해 크게 번지지 못한 만큼 밀도가 높은 정품으로 시공 됐을 경우 대형 화재로 번지지 않았을 개연성도 생겨나게 된 것이다.
즉, 함량 미달인 가짜 제품의 사용이 단열재 규제의 빌미를 제공했다고 볼 수도 있다.
당연히 이 같은 제품의 사용을 제지하지 못한 업계의 책임도 자유스러울 수만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샌드위치패널
이에 따라 업계 스스로가 함량 미달의 사기단열재를 만들고 유통시키는 업체는 고발 등을 통해 퇴출시키고 규정 제품만이 통용되는 자정 운동을 벌여야 한다는 여론이다.
정확한 제품을 만들어 시장의 신뢰를 쌓아야 비합리적인 정부 규제를 규탄하는 목소리에도 호소력이 가중된다는 것이다.
실제 단열재 시장은 스티로폼, 우레탄폼, 페놀폼 등의 유기단열재든 그라스 울 등 무기단열재든 곳곳에서 가짜 제품이 판치고 있다.
인증기관으로부터 시험을 받을 때는 정품을 사용하고 공사 현장에 납품할 때는 가짜 제품을 따로 만들어 납품하면서 시장의 신뢰도를 떨어뜨리고 있는 것이다.
최근 한국내화건축자재협회의 시험보고서에서는 시중에 판매 중인 KS인증 압출폴리스티렌(XPS) 단열재 6개 제품 중 5개가 자기소화성에서 불합격 판정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단열성과 경제성이 뛰어난 XPS는 불이 붙어도 스스로 꺼지는 자기소화성을 갖춰야만 KS인증을 받고 유통될 수 있다.
하지만 시험보고서에서는 단열재에 불을 붙였을 때 120초 안에 불이 꺼져야 하고 불이 태운 길이가 6cm에 미달해야 하는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단열재에 붙은 불꽃으로 인해 시료를 모두 태운 사례도 6개 중 절반이나 됐다.
5번에 걸친 연속 시험에서 2분 내에 6cm까지만 태우고 불이 스스로 꺼진 사례는 단 하나에 불과했다.
이 결과는 이천 화재의 발화 과정을 연상해 보면 상당히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들 제품들은 전국의 공사 현장에 실제 납품됐었다.
정품으로 KS인증을 받은 후 현장에는 기준에 미달하는 불량 단열재를 유통시킨 것이다.
이러한 불량 단열재 유통이 가능한 것은 현장 방문을 통한 전수 조사가 되지 않고 정기적으로 일부 제품에 대해 시판품 조사만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규격이 미달된 가짜 제품이 상당수 유통되다 보니 소비자들의 신뢰를 쌓기가 힘들어지고 있다.
여기에 가짜 샌드위치 패널도 판을 치고 있다.
샌드위치 패널은 이번 조치에서 준불연 제품 심재를 사용해야 하며 오는 2022년부터 점차적으로 스티로폼 등 유기단열재 사용을 막고 그라스 울 등 무기단열재만 사용토록 하고 있다.
현재까지 샌드위치 패널은 공장이나 창고 건물 등을 지을 때 벽체나 지붕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으며 전원주택이나 농가주택용 건축 재료로도 애용되고 있다.
단열 성능이 우수한데다 콘크리트 주택이나 목조주택, ALC 주택 등과 비교하여 건축비가 저렴한 편으로 소비자들의 선호도가 높은 제품이다.
하지만 상당수 패널 생산업체에서 심재로 사용하는 단열재를 규격과 맞지 않은 가짜 제품을 사용해 가짜 패널을 만들어 유통시키고 있다.
샌드위치 패널용 단열재로는 발포폴리스티렌(EPS)이나 압출법보온판(XPS), 우레탄폼, 미네랄울, 그라스울 등 일반적인 단열재 제품들이 사용되고 있다.
패널 제작 과정에서 가짜 단열재로 패널을 만든 후 제대로 된 규격 제품인 양 팔아 먹고 있는 것이다.
EPS나 XPS로 제작하는 제품은 물론 우레탄폼이나 그라스 울 제품도 시장 곳곳에서 밀도를 속인 제품을 찾아내기가 어렵지 않다.
단열재 생산업체는 샌드위치 패널의 특성상 철판 사이에 들어가는 심재의 품질을 제대로 확인하기 어렵다는 점을 악용해 외형상 부피만 규격에 맞춰 패널 생산업체에 팔아 넘기고 있다.
패널 생산업체는 이 같은 내용을 뻔히 알면서도 이익 남기는데 급급해 가짜 제품을 값싸게 납품받아 패널을 제작하고 있다.
아예 일부 단열재 생산업체는 조작된 제품 시험성적서를 패널업체에 넘기고 단속에 걸릴 경우 책임지겠다며 납품을 하고 있어 패널업체들이 쉽게 부정에 가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들은 정상적인 제품으로는 나올 수 없는 싼 가격을 내세워 단열재와 패널업계의 시장 질서를 무너뜨리고 있다.
정직한 단열재 생산업체들은 이들로 인해 경영난을 이기지 못하고 문을 닫거나 가짜 제품 생산 유혹을 느낄 수 밖에 없는 실정이다.
이 같은 가짜 제품의 유통은 부메랑이 돼 결국은 업계 전체를 죽이게 되는 만큼 하루라도 빨리 근절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잠시는 속일 수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소비자와 시장으로부터 외면을 당하면서 제품 전체에 대한 신뢰성을 잃기 때문이다.
결국 이처럼 가짜 사기 제품이 범람하면서 이천 화재 사고 대책에서 단열재 규제 강화의 빌미를 제공했던 만큼, 업계는 정부의 부당한 규제를 비판하기 위해서라도 내부 정화를 해야 한다는 여론이다.
소비자와 시장의 신뢰가 없으면 아무리 정당한 목소리를 내도 공정성과 타당성을 인정받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에너지단열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